대리석은 조각물 제작과 사원 및 궁전, 거대한 공공건물 건축에 걸맞은 재료로써 고대 문명인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먼 옛날 아테네 인근의 펜텔리코 산에서 채굴된 곱고 하얀 반투명 재질의 대리석은 세계 미술과 건축의 원형으로 남은 아크로폴리스에서 각종 기념물을 만드는 데 쓰였습니다.
1) 대리석을 잃은 그녀
전직 영화배우이자 가수였던 멜리나 메르쿠리(1920-94)는 그리스 문화부 장관을 역임하던 8년 동안 파르테논 대리석 혹은 엘긴 대리석의 반환을 요구하며 영국 정부를 향해 끝없이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영국의 한 타블로이드 신문은 이 기삿거리에 크게 기뻐하며 "이성을 잃은 멜리나"라는 표제를 내걸었습니다.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1801년과 1812년 사이에, 엘긴 가의 제7대 백작 토머스 브루스(1766-1841)는 아크로폴리스의 무너진 건물 틈에서 건축물 일부분과 조각품을 그리스 입장에서 불법으로 혹은 영국 입장에서 합법적으로 손에 넣었습니다. 그는 고대의 대리석 작품이 파괴되지 않도록 적절히 조처한 것이라 주장했고, 이 말을 받아들인 영국 정부는 1816년에 그가 가져온 예술품을 사들여 영국박물관으로 옮겼습니다.
페르시아 전쟁이 한창이던 기원전 480년에 페르시아 군은 아테네를 함락하고 사원과 제단, 조각상을 부수고 불태워 아크로폴리스를 돌 부스러기만 가득한 언덕으로 바꿔버렸습니다. 아테네의 황금기에 정치권을 장악한 페리클레스 시대 이전까지, 아크로폴리스는 폐허가 된 채 남아 있었습니다. 페리클레스는 아크로폴리스 재건, 그리고 신과 시민을 위한 축제에 걸맞은 웅장한 무대를 만드는 데 아테네의 막대한 재원을 사용하자고 대중을 설득했고 이 원대한 계획은 그의 생전에 마무리되지 못했지만, 이때 창조된 화려한 문화는 고대 세계에 아름다움을 더했습니다.
2) 과거로의 여행
아테네를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아름다움을 잘 알 것입니다. 현대식 건물이 다소 흉한 모습으로 도시를 둘러싼 채 근처의 산자락까지 뻗어 있지만, 여전히 그 중앙부에는 아크로폴리스의 거대한 석조 건물이 우뚝 서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기원전 55세기말의 아테네는 지금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성곽도시였습니다. 도시의 요새인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려면 서쪽에 난 공식 출입구를 지나가야 했고 프로필라이아라고 불린 이 거대한 관문은 아테나 니케 신전과 하나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출입구에 발을 들인 고대 아테네의 방문객들은 가장 먼저 아티카 해안 최동단의 수니온 곶에서도 그 투구와 창끝이 보인 다는 10미터 높이의 아테나 프로마코스 청동상에 시선을 빼앗겼지만 이 동상은 사람들의 눈길을 그리 오래 붙잡아두지 못했고 그 뒤의 나지막한 건물 너머로 아크로폴리스의 영광, 파르테논 신전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름답게 균형 잡힌 신전의 기둥 사이에는 두 개의 방이 있습니다. 하나는 황금과 상아로 만든 거대한 아테나 여신상을 보관하였으며, 또 하나는 아테네 제국의 금고 역할을 했습니다. 후대에 등장한 그리스도교 교회와는 다르게 이 건물에서는 예배나 종교의식이 열리지 않았으며, 그러한 행사는 모두 아크로폴리스의 야외 제단에서 거행되었습니다. 파르테논 신전은 나라의 부와 힘을 과시하는 일종의 전시물이었다는 점에서 현재 미국 워싱턴 D.C.D.C. 의 내셔널몰을 장식한 각종 기념비와 그 기능이 유사합니다.
3) 고대의 디즈니랜드
멸망한 도시국가의 폐허에서 건축물들을 하나로 연결해 주는 것은 바로 펜텔리코 산에서 채굴한 입자가 곱고 하얀 반투명 재질의 대리석입니다. 지금은 세월에 의해 금이 가고 모서리가 닳아버린 모습이지만, 아크로폴리스의 펜텔리코 대리석은 과거 아테네의 햇빛 아래 밝게 빛났을 것입니다. 물론 벽체와 기둥 같은 건축물의 중심 부분은 지금 보이는 수수한 모습 그대로였겠지만, 페디먼트, 프리즈, 메토프를 꾸몄던 선명한 색채의 소상과 각종 장식물은 고대의 아크로폴리스를 마치 디즈니랜드처럼 화려하게 보이도록 했을 것입니다.
다행히 아크로폴리스의 사원들은 4세기 로마의 그리스도교 정책 속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 그리스 신들의 여러 상징물이 사라지고, 다른 이교도 사원처럼 파르테논 신전과 에레크테이온 신전 역시 교회로 바뀌었지만, 로마인들은 건물의 기본 구조에는 아무런 변형도 가하지 않았습니다. 파르테논 신전은 그리스도교 예배당으로 계속 쓰이다가 1456년에 이슬람 세력이 아테네를 정복한 이후에는 모스크로 바뀌었고 우상 숭배를 엄격히 금지한 이슬람교의 지배하에서도 파르테논의 대리석 조각들은 굳건히 살아남았습니다.
이 신전을 파괴한 것은 고대 그리스도교도나 중세의 이슬람 광신도들이 아니라, 도리어 17세기의 이탈리아인들이었습니다. 1687년에 아테네를 포위한 베네치아는 오스만 제국군대가 주둔하고 있던 신전에 포탄을 마구 쏘아댔고 당시의 폭발로 말미암아 건물은 엉망진창이 되었으며 아크로폴리스 곳곳에 신전과 조각품의 파편이 흩어졌습니다. 게다가 베네치아군 사령관 프란체스코 모로시니(1619-94)가 신전의 서쪽 페디먼트에 남은 조각품을 훔치려다가 바닥에 떨어뜨려 박살 내면서 피해는 한층 심해졌습니다.
그로부터 한 세기 후 엘긴 백작이 그리스를 찾았을 때, 아크로폴리스 유적의 상태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터키 관리들은 뇌물을 받고 서구 관광객들에게 조각품의 파편을 팔았고, 지역 거주민들은 건물 벽체와 기둥 일부분을 건축재로 사용하거나 잘게 갈아서 미장재로 썼습니다. 엘긴은 파르테논 신전의 잔여 조각품 중 절반 정도를 떼어냈고, 현재 이 유물은 영국박물관에서 전시 중입니다. 이후 두 세기 동안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맡아서 보관한 덕분에 그리스 독립 전쟁(1821-32)과 이후 일어난 여러 차례의 분쟁, 그리고 환경오염으로 인한 손상과 문화재 복원에 대한 19-20세기 그리스인의 무관심 속에서도 이 대리석 유물이 잘 보존된 것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2009년 아테네에 신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이러한 영국의 주장은 크게 힘을 잃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남은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품을 모두 수용하도록 설계된 이 박물관에서, 방문객들은 신전의 장식물을 원작자인 피디아스가 배열한 순서대로 차례차례 감상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