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고는 모래 알갱이나 결정체, 설화석고와 퇴적암 속에서 발견되는 백악질 덩어리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 광물은 파리의 회반죽을 만드는 주원료로써, 건축과 미술, 의학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1) 반죽이 되다
골절된 수족을 고정하는 방법은 먼 옛날부터 있었다. 산업혁명 이전에도 의사들은 팔과 다리가 부러졌을 때 제대로 처치하지 않으면 환자의 사지가 복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았고 고대 이집트의 의사들은 미라의 방부처리용 재료와 기술을 골절 치료에 사용했습니다.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 의사들이 하는 바로 그 선서의 주인공은 밧줄과 도르래가 장착된 침상을 이용해 골절 환자의 몸을 고정해 두면 뼈가 정상적으로 붙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고대와 중세의 의사들은 뼈를 원형대로 접합하려면 부목과 함께 붕대를 단단하게 굳혀 골절 부위를 고정해야 한다고 여겼으며, 19세기까지 다양한 재료가 붕대를 굳히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엑스레이와 최첨단 영상 기술이 구비된 오늘날에도 뼈가 제대로 붙지 않으면 불구가 되거나 심한 통증을 겪게 됩니다. 때에 따라서는 큰 수술을 받아야 하거나 골절 부위가 다시 부러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거에 골절상을 치료할 때 발생했던 문제는 환자가 오랫동안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는 특히 생계형 근로자와 신속하게 응급 처치가 필요한 전장의 군인들에게 실용성이 크게 떨어지는 치료법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9세기에 군 대와 민간의 의사들은 붕대를 빨리 굳히는 방법을 여러모로 찾아보기 시작했고, 결국 파리의 회반죽이 가장 적절한 재료로 떠올랐습니다. 현재와 비슷한 형태의 석고붕대는 19세기 중반에 한 네덜란드 군의관이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소석고 분말에 물을 섞고 기다란 아마포 조각을 적셔서 환자의 부러진 팔다리에 감았고 나서 몇 년 후 크림 전쟁(1853-56)이 벌어졌을 때 어느 러시아 군의관이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부상자들을 치료했습니다. 19세기말에 이르러 이 기술은 군과 민간 병원에서 골절상의 표준치료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 조각가의 선택
역사상 석고가 가장 일찍 사용된 분야로는 미술을 들 수 있는데, 특히 부드럽고 반투명한 설화석고는 복잡한 장식물과 조각상을 만들기에 매우 이상적인 재료였습니다. 흔히 앨러배스터로 불리는 설화석고는 방해석 재질의 진짜 앨러배스터와 함께 조각물 형태로 고대 문명 곳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돌은 중세 브리튼 섬에서 아름다운 제단화와 추모비를 만드는데 쓰였지만 물에 잘 녹는 성질 때문에 석고는 건축 자재나 외부 장식 재료로 사용되지 못했습니다. 그 밖에도 금속 조각상의 틀을 만들거나, 박물관 전시 혹은 학생들의 미술 연습을 위해 기존 작품의 복제품을 만들 때 파리의 회반죽은 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의 복제 조각실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러 가지 석고상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습니다. 그곳에 전시된 복제품 중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같은 등신대 작품도 있고,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대성당의 영광의 문과 같이 역사적인 건물의 일부분만 재현한 것도 있습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113년 로마에 세워진 트라야누스의 기둥으로, 원작의 크기가 워낙 컸던 탓에 실물 크기의 복제품을 반으로 자른 후에야 겨우 전시실에 들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