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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물의 역사

점토의 역사

by 참이슬맞으며 2023.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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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이 점토로 최초의 인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근동 지역의 오랜 종교의식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이 사실은 원시 인류에게 점토가 그만큼 중요했다는 것으로, 그들은 점토로 각종 용기와 솥, 조각상, 악기를 만들었습니다. 점토를 햇볕에 말리거나 불에 구워서 만든 벽돌과 기와는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인간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건축 자재에 속합니다.

고고학 기록에 의하면, 인간과 점토의 관계는 음식이나 물을 담는 그릇이나 솥 같은 실용 도구가 아니라 모닥불 속에서 구워낸 인간과 동물 모양의 조각상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체코의 돌니 베스토니체에서 출토된 수천 개의 작은 소조상과 점토 덩어리는 발견 당시 이미 산산조각 난 상태였는데, 당시 사람들이 주술 의식을 하던 도중 일부러 토기를 부순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후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에서 발견된 동물 벽화 역시 이와 유사한 종교의식을 위해 그려졌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점토 조각상의 역사는 인류의 선조가 정착 생활을 시작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의 인류는 돌 · 나무 · 뼈로 된 무기와 도구로 사냥감을 쫓으며 수렵과 채집 생활로 목숨을 이어갔습니다.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가장 오래된 토기는 중국 후난 성의 옥석암 동굴에서 나왔는데, 그 제작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1만 8000만 8000여 년 전이라고 합니다. 이 동굴은 후기 구석기시대 말에 사냥꾼들의 야영지로 사용되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2009년에 그곳에서 토기 가마솥 두 개와 돌 연장, 화덕의 숯과 재, 동물 뼈 등을 발견했습니다. 어쩌면 원시인들은 구석기식 탕수육을 만드는 데 이 도구들을 사용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외에 세계 최고라는 이름에 도전한 토기로는 일본의 조몬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있습니다. 토기는 아메리카 · 아프리카 · 근동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했으며, 원시인들은 진흙을 손으로 빚거나 나선형으로 길게 쌓아서 항아리를 만들었습니다. 이 방식은 지금으로부터 6000-8000년 전에 메소포타미아에서 도자기 돌림판이 발명되기 전까지 계속 활용되었습니다. 초기의 토기는 구덩이를 파서 만든 가마나 모닥불 안에서 구워졌는데, 상대적으로 가열 온도가 낮았기 때문에 제품의 표면이 갈라지지 않게 하려면 단순하고 둥근 형태로 만드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더 높은 열을 내는 특수 가마가 발달하면서 인간은 더욱 다양한 형태의 도자기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도자기용 점토는 지금도 여전히 각종 식기와 다기. 꽃병 장식물 같은 다양한 물건의 제작에 애용되었습니다.

정착 생활을 시작한 후, 돌과 나무가 부족한 곳에서 살았던 인간은 점토를 건축 자재로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역사에서 가장 유명했던 건물 중 하나도 불 속에서 구운 흙벽돌로 축조되었습니다. 바로 창세기 113-4절에 등장하는 바벨 탑입니다. 이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에는 화가 난 신이 탑을 쌓던 이들의 언어를 어지럽히고 그들을 세계 곳곳으로 흩어놓아 인간의 오만함을 단죄했다고 합니다. 비록 성경에서 언급된 바벨탑에 대한 고고학적인 증거는 없으나, 메소포타미아와 엘람 지역에서 건조 흙벽돌과 소성 흙벽돌로 축조된 거대한 건물, 즉 지구라트가 다수 발굴된 바 있습니다. 지구라트의 원조격 건물로는 메소포타미아의 우바이드시대에 지어진 사원과 제단을 들 수 있는데, 당시 사람들은 축대 위에 건조 흙벽돌을 쌓는 방식으로 이 거대한 정방형 건물을 세웠습니다.

햇볕에 말린 흙벽돌은 쉽게 부서지는 편인데, 이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후가 건조한 이라크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고대 수메르와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기존 건물을 부수고 다시 처음부터 건물을 짓지 않고, 오래된 건물에 흙벽돌을 채워 평평하게 한 후 그 위로 새로운 건물을 짓는 방식을 썼습니다. 이렇게 버려진 마을이 자연스럽게 파괴되고 그 위로 다시 거주지가 층층이 쌓여 나타난 것이 바로 ''입니다. 19세기 유럽의 고고학자들은 구약 성경 속의 바벨과 에레크 같은 도시를 발굴하고자 노력했는데,, 그들은 텔을 파냄으로써 마침내 우르크, 우르, 바빌론 등의 고대 도시를 발견했습니다. 이 도시들의 중앙에는 신전 역할을 하는 지구라트와 도시의 수호신이 머문다고 여겨졌던 집이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내부에 지하방이나 묘실을 갖추고 무덤으로 쓰였던 것과는 달리, 지구라트는 외부의 경사로나 계단이 제단으로 이어지는 계단식 건물이었습니다. 지구라트의 내부에는 건조 벽돌이 사용되었고 겉면에는 광택제를 바른 유색의 소성 벽돌이 쓰였습니다. 광택제를 바른 벽돌은 장식 역할과 함께, 안쪽의 건조 벽돌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지구라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에테메난키인데, 이곳은 바빌론의 신 마르두크의 성소로서 성경에 등장한 바벨탑이 바로 이 건물을 지칭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지구라트 유적은 그리 많지 않으나,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설명에 의하면 에테메난키는 그 높이가 300피트, 맨 아래층의 면적이 9만 평방피트에 달했다고 합니다. 총 일곱 층으로 구성된 이 건물의 외부는 광택제를 바른 벽돌로 둘러싸였고 그중 세 개의 층계가 실내로 이어졌으며 맨 위층에는 신의 거처로 사용된 커다란 제단이 있었습니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을 보면, 제단에는 마르두크 신의 상징물 대신 커다란 소파와 황금 탁자가 마련되어 신이 맞이한 인간 '신부'의 집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기원전 4세기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에테메난 키를 더욱 크게 지을 의도로 이 건물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른 죽음으로 계획은 중단되고 말았으니, 결국 19세기 사람들이 바빌론 유적의 발굴과 함께 발견한 것은 지구라트의 거대한 토대 부분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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