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더욱 정교한 기술의 세계로 이끈 것은 바로 청동이었습니다. 청동은 주석과 구리의 합금으로, 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거대한 교역망의 형성과 새로운 금속 주조 및 가공기술의 발달이 필수적이었습니다.. 비록 기원전 제1천년기에 연장과 무기 생산의 주권을 철에 넘겨주고 말았지만, 청동은 여전히 주조와 조각 분야에서 예술가들이 애용하는 금속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에 의하면, 청동기시대는 인류가 커다란 행복을 누렸던 황금과 은의 시대에 뒤이어 나타났다고 합니다. 비록 앞의 전 시대에 관한 역사적인 증거는 없지만, 고고학자와 역사가들은 청동기시대라는 단어를 통해 청동 야금술이 최고의 기술이자 부와 권력의 원천이었던 시기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제4천년기 말부터 기원전 제1천년기까지 이어졌는데, 인도와 근동지역을 비롯해 당시 기술적으로 가장 진보했던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기원전 제2천년기 말부터 철이 청동을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헤시오도스가 보기에 청동기시대는 곧 투쟁의 시대였으며, 당대의 인간은 전쟁의 신 아레스를 믿고 섬겼다고 합니다. 이러한 설명은 역사 및 고고학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집트·메소포타미아·시리아·아나톨리아·크레타·그리스·인도·중국 등지에서 인류 최초의 거대한 제국 문명이 등장한 시기도 바로 청동기시대였습니다.
청동은 자연 상태에서 발견되는 금속이 아니라 인공 합금으로써, 조성의 9할은 구리이고 나머지 1할은 주석입니다. 처음에는 주석 대신 비소를 넣었는데 이는 '비소 청동'으로 불립니다. 비소 청동은 주석 청동보다 더 유연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주석 청동과 비슷한 강도를 얻으려면 더 많은 담금질 작업이 필요하며 원료인 비소가 인체에 유독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청동은 구리와 돌을 대신하여 각종 연장과 무기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비록 원료를 구하기가 까다롭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청동은 구리나 돌보다 더 강하면서도 주조하기 쉬웠으며 용도가 다양했습니다. 그리하여 인류는 새로운 형태의 도구나 무기, 훨씬 더 복잡한 조소 작품과 악기 및 장식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초기 철기시대에는 연철로 만든 무기나 연장보다 오히려 청동 제품의 강도가 더 뛰어났으며, 이러한 장점 덕분에 청동은 강철이 등장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고 꾸준히 사용되었습니다. 청동이 철보다 나은 점 또 한 가지는, 구리와 마찬가지로 표면에 생기는 녹색 탄산구리 막 덕분에 산화가 방지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석과 구리는 함께 발견되는 일이 매우 드물었습니다. 따라서 청동을 만들려면 구리와 섞을 주석을 먼 곳에서 수입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중해 지역에서 사용된 주석은 대부분 브리튼 섬 남서부의 데번이나 콘월, 스페인 북부 및 프랑 서북부의 광산에서 생산된 것으로 보입니다. 근동 지역과 인도의 거주민들이 중앙아시아에서 주석을 수입한 반면, 중국과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이례적으로 자기 지역에서 주석을 직접 캐내어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장거리 무역으로 말미암아 고대 세계를 아우르는 광대한 연락망이 탄생하게 되었고, 완전히 다른 문화권 간의 직접적인 접촉이 이루어졌습니다. 청동기가 만들어진 덕분에 경제적 세계화의 첫 장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중해 동부의 뱃사람들은 당시 세상의 끝으로 여겨지던 영국 제도를 향해 배를 띄웠고, 중앙아시아의 주석은 훗날 실크로드로 불린 길을 따라서 인도와 근동 지역에 도달했습니다. 주석 청동 이후로 알루미늄 청동 • 망간 청동 • 네이벌 황동 • 규소 청동 같은 여러 가지 구리 합금이 탄생했고, 이러한 금속들은 뛰어난 부식 저항성과 전기 전도성을 보이며 일상생활과 산업, 군사 및 해양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청동은 주조의 재료로 가장 인기가 높아 사람들은 종종 이를 따로 '브론즈'라고 부릅니다. 로마 제국 시대에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아 해안의 브룬디시움, 현재의 브린디시 항구는 청동의 주요 생산지이자 수입지였습니다. 당시 로마 사람들은 이 지명을 따서 청동을 아에스 부룬디시 움, '브룬디시움의 금속'이라고 불렀습니다.
신석기시대의 기록물이 남아 있지 않으므로, 당시의 국가나 도시의 정치 및 사회 구조를 재구성하기란 거의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러나 고고학계는 이 시대의 문화가 성, 신분, 부와 자산에 기초한 사회 분화 없이 비교적 민주적이고 평등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금석병용시대에 구리가 등장하며 본격적으로 금속이 사용되었고, 이로 말미암은 사회 계층화의 진전으로 금속 공예품을 구매하거나 그 제작을 의뢰하는 부유층과 권력층, 야금 전문가는 석기를 사용하던 일반 사람들과 차별 화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크레타 섬의 미노아 문명. 그리스의 미케네 문명. 아나톨리아의 히 타이트 문명. 이란의 엘람티 왕국·인도의 하라파 문명, 그리고 이집트·메소포타미아·중국 등지에서 일어난 고대 제국의 발달과 함께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이들 문화권은 모두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왕정을 구축했으며, 거의 모든 자원이 왕의 손에 통제되어 왕궁과 사원, 기념묘를 건축하는데 아낌없이 쓰였습니다. 당시 지배층의 권력과 부는 금과 은의 보유량이 아니라 주석·구리·청동의 교역과 청동 공예품 제작,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기 생산에 좌우되었습니다. 사실 도끼나 작은 칼·끌 · 화살촉 따위를 만드는 데는 구리만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인류는 구리보다 더욱 강하고 유연한 청동 덕분에 이전에 없었던 무기인 장검을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장검은 켈트문화 권에서 중국으로 건너갔으리라 추측되며, 뒤이어 청동으로 제작된 갑옷· 투구· 방패가 탄생했습니다. 청동기 전사들은 석제 무기를 사용하는 적과의 전투에서 훨씬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습니다. 군사기술의 역사에서 청동기시대를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마차의 등장으로, 이는 중앙아시아인들이 말을 사육하면서부터 탄생했습니다.
장검과 마차, 새롭게 등장한 이 두 가지 발명품에 의해 청동기시대의 전쟁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호메로스가 지은 그리스 최고의 서사시 《일리아드》는 청동기시대의 두 강 대국 미케네와 트로이의 전투를 그리고 있습니다. 마차에 몸을 실은 아킬레스, 헥토르, 파리스, 오디세우스는 청동 갑옷을 입고 청동 창과 화살, 장검으로 트로이의 전장에서 대결을 펼쳤습니다.
당대의 강대국들은 청동 제조 기술과 교역을 통해 광대한 영토를 획득했고, 세력 확장 과정에서 자연스레 각국 간의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중앙집권왕조와 국제 무역은 인류에게 전쟁과 상관없는 혜택을 안겨주기도 했는데, 그중 하나가 문자의 탄생입니다. 이집트에서는 히에로글리프라는 상형문자,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설형문자가 나타났으며 중국에서는 거북이 등껍데기와 청동 용기에 새겨진 초창기 한자의 모습이 발견되었습니다.. 글자는 신과 같은 존재로 여겨졌던 왕들의 위대한 업적을 기록할 뿐만 아니라 각종 자원의 재고를 관리하고 무역 계약서를 작성하는 등 세속적인 활동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청동은 인류 최초의 주조 화폐 재료로써 경제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기원전 10세기에 중국인은 이전 시대 화폐였던 조개껍데기 모양을 본떠 중국 최초의 청동화폐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중국의 청동 주화는 삽 · 괭이 · 칼 등의 형태를 띠었고,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원형 주화는 그로부터 훨씬 더 세월이 지나서야 나타났습니다. 기원전 6세기에는 인도에서도 청동 화폐가 제작되었고, 고대 터키와 그리스에서도 호박 금화 · 금화 · 은화와 함께 청동 화폐가 사용되었습니다.
청동은 조각이나 장식예술, 음악 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초창기의 주조 장식물로는 중국 은나라의 청동 제품이 있습니다. 화려한 모양의 그릇과 각종 의식에 사용되는 악기가 부장품으로 제작되어 시신과 함께 땅에 묻혔습니다. 당시 많은 청동 제품이 밀랍 주조법으로 가공되었는데, 이후 이 기술은 인도·이집트·그리스 지역에도 전해져 조각품 제작에 사용되었습니다.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의 청동 조각상은 거의 없지만, 우리는 로마시대의 복제품을 통해 당대의 작품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청동 조각품을 만들 때도 과거의 밀랍 주조법과 유사한 방법이 쓰입니다. 고대 중국인은 청동 종을 주조하여 제례와 연회용 악기로 사용했으며, 서양에서는 뛰어난 부식 저항성과 은은하게 퍼지는 울림 때문에 종청동이 교회당 종의 제작 원료로 가장 선호되었습니다.
청동은 그 친척뻘인 황동과 함께 오늘날까지 살아남았지만, 청동기문명은 이른바 '청동기시대의 붕괴'라는 대격변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집트 · 시리아 · 미케네 · 키프로스 · 히타이트와 바빌로니아 등 지중해 동부의 강대한 제국과 왕국은 모두 멸망했고, 그들이 주석과 구리를 얻고자 구축했던 거대한 무역망 역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로써 지중해 세계는 첫 번째 암흑기를 맞이하는데,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우리가 흔히 암흑시대라 부르는 로마 제국 멸망 후의 수 세기보다 청동기시대 붕괴 이후의 시기가 훨씬 더 암담했다고 합니다. 그 후 근동 지역과 유럽 남부에서 다시 문명이 일어났을 때, 그 기반을 형성한 것은 청동이 아니라 새로운 금속, 철이었습니다.